이야기란 인간이 균형을 잃었을 때 어떻게 그것을 되돌리고자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로버트 맥기의 인터뷰 중 나온 말이라고 한다. 나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건가?

개인적인 것으로 창작을 해라...

개인적인 것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어쩔 수 없이 모인 사람들은 몇 명이든 외롭다

소속감

소속감은 굉장히 따뜻하고 상냥하다. 누군가는 취미에 관한 소속감을 가지고, 누군가는 회사나 직업적 특성으로 생겨난 사회에 소속감을 가진다. 뭐가 어찌됐건 이들은 그것에 대해 굉장히 자부심을 가지고 아낀다. 그것이 금전적인 부분에 보탬이 된다면 더 할 나위 없다. 자부심을 넘어 본인이 속해있는  "      "와 스스로는 동질적인 것이다,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겠지, 라고 뿌리 내려버릴 것이다. 뿌리 내린다는 것이 부정적인 단어는 아니지만, 조금은 위험해 보인다.  내가 무언가에 속해있지 않기에, 부담이 없어지고, 더 가벼운 생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가볍다는 것은 얄팍하다는 것이 아니다. 붕 뜬다는 감각에 더 가볍다고 생각해. 사람이 스스로 떠오르는 것은 당연코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떠오르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그 행동은 마음이 더 가벼워졌기에, 무언가에 뿌리내리지 않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해망상

손바닥이 펴져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 그저 손이 다가오는 게 무서웠었지. 제대로 봤다면 좋았을텐데. 나를 감싸는지 조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 그저 옭아맨다고 생각했었지. 살며시 만져봤다면 어땠을까.

죽음을 각오해 본 적이 있나.

죽음을 각오해 본 적은 없지만, 각오하고 고통 속에 뛰어들어 본 적은 딱 한 번 있다. 그것은 고통을 고통으로 무마하기 위한 자기위로 형식의 자해였으며, 그다지 좋은 행동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농구골대 위에서 뛰어내린 행동이 유일한 고통에 대한 자의적인 도전이었다. 필사적. 죽음을 각오하고 힘을 다하는 것. 이 단어를 뱉을 정도의 각오가 되어있나?

부끄럽다.

아마 오늘 학원을 갈 때 이런 기분이 드는 이유는,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박고 손으로 흙을 쓸었기 때문에. 스스로 노력했어! 라고 자신할 수 있다면 학원을 가는 것이 즐거웠겠지. 적어도 내 실수를 짚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겠지. 그렇기에 지금 난 부끄럽고, 도망치고 싶다. 그 이유를 이렇게 적어놓는다. 더는 후회하고 싶지 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