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칭 은퇴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를 넷플릭스로 봤다. 전부터 얼핏 들은 "이해 할 수 없다" 라는 평가와 같은 감정이 들었다. 해석을 돕기 위해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제작자인 본인조차 알수없는 부분이 있다.' 라는 얘기를 듣고 얼척이 없었다. 본인도 알 수 없는 본인의 작품. 대체 뭘 만든 것인가. 마치 분출은 하고 싶지만 주제가 없는 만화가 지망생 소년의 끝 없는 낙서같은 느낌일까. 글쎄. 답을 정해주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결의 작품인 것은 확실하다.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 사실 우리의 인생은 대부분 그러하다. 죽음이란 마무리를 제외하고는. 끝없이 헤엄치고 움직이며 '나'라는 궤적을 세상에 가까스로 새긴다. 그리고 파도 한 번에 훌쩍 사라진다. 그런 세상을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나에게 이 작품의 제목, 결말, 주제가 모두가 이렇게 메세지를 주는 듯 했다.

부자유 속 자유

오늘 유튜브로 코드를 공부했다. 영상을 다 보고 난 뒤 내가 건반을 통으로 외운 곡들을 다시 쳐보며 화성학 지식과 빗대보니 전부 들어맞아서 정말 신기했다. 문득 든 생각. 나는 지금까지 음악이 자유로운 무한한 표현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것 역시 틀이 있을 수 밖에 없구나. 해변에 카프카에서 오시마가 말한 "인간은 부자유를 추구한다." 라는 말이 와닿는다.

죽음은 있는가?

1분과학 채널을 봤다. 우리는 죽음을 느끼지 못한다. 짐작할 뿐이다. 생명체는 죽음을 영원히 알 수 없다. 애초에 죽음이란 개념조차 의문이다. 나는 그저 눈을 감을 뿐인데 내가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4차원의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 듯이 죽음이란 개념은 그저 인류가 멋대로 붙인 또 하나의 시작이 아닐까 죽는 나와 살고있는 나의 갈라짐이 아닐까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사실 꽤나 무거운 족쇄가 아니였을까 죽어도 돼. 라는 말은 아니지만 생명의 자유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어쩌면,

오늘이 아쉬우면,

내일이 기대된다! 이 말을 떠올렸을 때 미소짓게된다.

눈을 감고,

어깨에 힘을 푼다. 눈썹에 힘을 뺀다. 얼굴 근육을 풀어주고, 턱도 움직여준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숨을 들이쉰다. 아무런 생각이나 하게 된다. 숨을 내쉰다. 나는 지금 ~하고 싶다. 계속 숨쉬기를 반복한다. 나의 욕구가 또렷해진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기록한다. 나의 욕구를, 나의 소망을.

내 노예가 되어줄래?

생각 같은 건 영원히 그만둘 수 있어. 문득 유튜브를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노예가 된다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난 지금 생각을 하고 있는가? 어째서 의미없이 유튜브를 뒤적이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가? 이 행동 자체가 영상의 노예가 되고 싶은 것 아닐까? 끔찍하다 부끄럽다 난 오늘도 시간을 허비했고 보람찬 삶을 살지 못했다

로이 설리번

낙뢰 7번을 맞고 살았지만 결국 자살을 선택한 남자 온몸에 낙인이라도 새겨진듯한 번개자국 대체 어떤 생각을 하며 생을 살아갔고 어떤 기분으로 끝맺었을까